아후강? 터니시안? 튀니지안? 튀니지식? 코바늘
Tunisian 코바늘 무늬를 연습하다가 이 기법을 어떻게 한글로 표기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일단 Tunisian Crochet라는 것은, 코바늘인데 대바늘 같이 코들을 바늘에 건 채로 뜨는 기법을 뜻하는 것으로 여러 가지다른 용어들로도 불린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이 기법을 지칭하는 여러 용어들이 있다고 한다. Tunisian crochet, Afghan crochet, tricot stitch, Scotch knitting, Princess Frederick William stitch, Princess Royal Crochet stitch, shepherd's knitting.(https://en.wikipedia.org/wiki/Tunisian_crochet) 영어권에서는 Tunisian crochet가 일반적인 용어인 것 같고 북유럽에서는 '후킹'이라고 번역되는 어떤 단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근데 후킹이 뭐지??;;) 우리나라에서는 아프간, 튀니지언 등을 사용하는데 그렇게 저변이 넓은 뜨개 방법이 아니어서 명확히 정해진 이름은 없는 것 같다. 아프간이나 튀니지언은 영어식 표기를 읽은 것이라 보이는데 가끔 아후강이나 터니시안이라는 용어도 종종 볼 수 있다.
1. 아후강
아후강이라는 것은 아무래도 일본에서 온 용어인 것 같다. 일본 쪽 책자들은 이러한 기법을 대개 アフガン(編み)로 표기하고 있다. 아후간/아후강으로 읽히는데, 영어 Afghan을 읽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Afghan(영어) > アフガン(afugaN, Afghan에 대한 일본식 발음) > 아후강으로 변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 위키피디아를 보니 일본에서 이 기법은 아주 예전에 유행한 것으로 보인다. 1965년에서 1975년 사이, 즉 쇼와 40년까지 일반적인 코바늘과 함께 대표적인 뜨개법으로 유행하다가 대바늘에 밀렸다고 한다.(https://ja.wikipedia.org/wiki/%E3%82%A2%E3%83%95%E3%82%AC%E3%83%B3%E7%B7%A8%E3%81%BF) 이때즈음 하여 한국에 들어왔다면 아후강이라는 용어가 무척이나 이해가 간다. 지금이야 유튜브나 서적을 통해 여러 나라의 뜨개질을 접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일본 쪽을 통해 한국으로 들어왔을 것이고, 당연히 '아후강'이라는 용어로 들어왔을 것 같다.
만약 이러한 경우가 맞다면, 이 용어를 굳이 사용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물론 예전에야 담배처럼 일본의 외국어 발음이 외래어로 들어온 경우가 많지만 지금은 일본을 통해 새로운 문물을 수입할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또 당시에 들어와서 그러한 용어로 한국 뜨개질 커뮤니티에 단단하게 뿌리내렸으면 모르겠지만 또 그 경우는 아니니까.
아후강이라는 명칭은 별로여도 아프간이라는 명칭은 고려해 볼 만도하지만 나에게는 낯설다. 보통 영미권 유튜브를 보면서 이 기법을 배워서인지 Tunisian이라는 표기가 더 익숙하다. 또 아프간이 이 기법을 뜻하기도 하지만 가끔 특정 패턴이나 뜨개질해서 만든 담요 같은 것을 뜻해서 더더욱 낯설게 느껴진다.
2. 터니시안, 튀니지안
그리고 또 하나 터니시안이나 튀니지안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튀니지안의 경우 Tunisian을 읽은 것으로 보이는데, 터니시안은 그 표기의 출처를 잘 모르겠다. 물론 외국어 발음을 한글로 정확히 표기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무엇이 더 정확한 발음 표기이니 따지는 것이 무의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튀니지식 뜨개, 라는 의미에서 Tunisian이라고 한다면, 한국에서 Tunisia라는 나라는 튀니지, 라고 표기하므로(표준국어대사전에 실린 외래어 표기) 터니시안보다는 튀니지언이라는 표기가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이에 대해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다. 왜냐면 이것은 튀니지라는 나라명을 표기할 때이기 때문이다. 국가명의 발음은, 좀 더 그 유래에 대해 찾아봐야겠지만, 아무래도 프랑스 발음에서 가져온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여기서 '튀니지의' 라는 형용사형태는 영어의 형식이니 영어 발음으로 표기해야 한다면 조금 이야기가 복잡해진다. Tunisian crochet에서 Tunisian이라는 영어 단어를 굳이 한글로 표기하자면 튜니지언(여기서 u는 단모음이 아니라 j계열 이중모음으로 발음된다) 정도겠다. 이 기법을 소개하는 영미권 유튜브에서의 발음을 들어봐도 튜니지언에 가깝게 들린다. 그래서 튜니지언으로 표기해야 하나 하면, 그것도 저항이 있다. 왜냐면 아무리 언어의 형식이 그래도 의미는 튀니지라는 나라와 뗄 수 없고 그 나라를 수십년간 '튀니지'로만 표기했기 때문이다.
(Tunisian에서 s는 보통 Ʒ나 z로 발음되는 것으로 사전에 나온다 이 경우 외래어표기법에 따라 ㅈ으로 표기하는 것이 원칙이다. (외래어표기법 제2장 표1) 다만 영어사전에서 이 발음이 'ʃ'발음도 가능하다고 되어 있으니 ㅅ으로 표기할 수도 있다.그래서 이 글에서는 Tunisian에서 u 부분 발음에 대해서만 초점을 맞췄다.)
또 하나의 반론은 현재 튀니지라고 표기하고 있는 그 나라의 실제 발음이 튀니지인가, 하는 것이다. 이 나라는 아랍어를 사용하고, 아랍어의 발음은 '투'에 가깝게 들린다. 하지만 이 문제도 결국 tunisian은 영어단어이니 영어식으로 읽어야 할 것 같기는 하다. 그리고 뒤에서 이야기하겠지만 실제 이곳의 전통 코바늘 기법인 것도 알 수 없다고 하니..
여튼 영어 발음이 아무래도 터니시안과는 어느 정도 괴리가 있기 때문에, 어쨌건 생각할 수 있는 터니시안의 기원은, 튀니지를 '터니시'와 유사하게 읽는 어떤 다른 언어의 발음을 한글로 표기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게 최선의 추측이다 다만 튀니지와 관련 있을 법한 프랑스어나 아랍어 발음은 아니다. 그렇다고 아후강처럼 영어>일본어>한국어로 온 경우도 아닌 것 같다. (일본어 위키피디아를 보면 여기도 이중모음으로 표기하고 있다. 'チュニジアン츄니지안'으로)
외국어 발음을 정확히 표기하는가, 라는 문제는 언제나 어려운 문제이다. 꼭 영어식 외래어이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외래어의 기원도 복합적인 경우가 많다. 또, 몇 개의 발음을 허용하는 경우 무엇을 기준으로 잡아 표기할 것인가도 문제이다. 그리고 어떤 표기법이 있어서, 예를 들어 우리의 외래어 표기법을 생각해 보면, 그것에 따라 표기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약속일 뿐 정말 '정확한' 발음을 표기한 것인가는 또 다른 문제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이래서 약속이 필요한 것 같기는 하다.
3. 튀니지식(式) 코바늘
튀니지식 코바늘 정도로 표기하는 것도 괜찮아 보이기도 하지만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튀니지와 어떤 연관을 가지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그러니까 튀니지식이라고는 하는데 왜 그 기법이 튀니지와 연관 되었는지는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프랑스에서 그렇게 부르니 그렇게 썼다는 게 최선의 추측인 듯 하다. 그러니까 Tunisian crochet를 튀니지식 코바늘 (기법)이라고 말하는 것은 저 단어의 하나하나의 의미를 충실히 번역한 것이지만, 실상 그것이 의미하는 대상은 실제로는 없다는 것이다. 다시 정리하면, 튀니지식 코바늘이 지칭하는 어떤 기법은 있는데, 튀니지에서 발생한 코바늘 기법이 실제로 있는가 하면 그건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뭔가 블랙홀에 빠진 느낌이다.
그러면 어근과 어근이 만나서 제 3의 뜻을 만들어낸 것으로 보고 그냥 하나의 합성어로 취급해 튀니지코바늘, 이라고 하나의 단어로 표기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아직 저변이 넓은 기법이 아니라 약속된 용어가 없어서 너무 어려운 문제다. 튀니지, 라는 외래어 표기를 오랫동안 봐 와서 튀니지안이나 튀니지식 코바늘이 제일 저항이 없기는 하다. 그래서 언젠가 이 기법에 대한 용어가 정리된다면 둘 중 하나가 되었으면 좋겠다.